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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수작 '휴가' 속 핵심 키워드 6영화 잡담 소식 2021. 10. 12. 08:38728x90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독불장군상, 독립스타상 3관왕에 빛나는 독립영화 '휴가'는 길 위에서 1,882일째 농성중인 해고노동자 재복이 해고무효소송의 최종 패소가 결정되자 집으로 열흘 간의 휴가를 떠나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파마' '결혼전야' '천막' 등을 통해 사회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섬세하게 담아온 이란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위태로운 삶의 밥줄을 붙들고 살아가는 모두를 위로하는 웰메이드 휴먼 드라마다.
영화의 이해를 돕는 영화 속 핵심 키워드는 크게 6가지다.
20년 넘도록 일해도 단 한 마디로 통보당할 수 있는 #정리해고
정리해고란 고용인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근로기준법에 따라 피고용인을 해고하는 것을 말한다. 정말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오랜 시간 사업장을 위해 일한 근로자들에게 충분한 설명 없이 하루아침에 해고를 통보하는 것은 부당하다. '휴가'의 재복을 포함한 해고노동자 동료들도 20년 넘도록 사업장을 위해 일했지만, 이와 같이 부당한 정리해고 대상이 됐다. 당장 밥줄이 끊긴 근로자들은 막막할 수밖에 없다. 다른 곳에 재취업을 하면 되는 게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몇십 년 넘게 한 사업장에서 특정한 일을 해온 노동자들의 경우 재취업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밥줄 끊기고 5년, 길 위에서 살았다 #천막농성
매일같이 나와 일하던 회사에서 당장 내일부터 일할 수 없으며 급여도 줄 수 없다고 하니, 하루아침에 근로자에서 해고자가 된 이들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말 그대로 길바닥 위에 천막을 치고 부당 해고를 철회하라는 농성을 이어가는, 천막농성을 시작하는 것이다. '휴가'의 선인가구지회 노동자들도 1,882일 동안 길 위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며 사람들에게 목청껏 선인가구의 정리해고에 대한 부당함을 알린다. 그러나 5년간의 힘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복을 비롯한 해고노동자 동료들은 해고무효소송에서 최종 패소하게 되고, 그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잠시 혼란에 빠져 있다가 재충전의 시간인 열흘 간의 휴가를 갖기로 한다.
직장인이 근로 중인 사업장에서 다쳤다면 #산업재해
재복은 친구의 소개로 일주일간의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게 되고, 갓 스무 살이 된 사수 준영을 만난다. 준영은 일하던 중 발을 삐끗해 크게 다치게 되고, 다리 깁스를 해 한동안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준영같은 근로자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 산업재해 보상 제도이다. 통상적으로 줄여서 산재 처리로 부른다. 그러나 재복의 친구인 우진과 준영은 산재 처리에 대해 회의적이다. 우진은 무재해 사업장에 잡음 나는 게 싫고, 준영은 안 그래도 다쳐서 자기 자리에 공백이 생기는 것이 눈치 보이는데 산재 처리를 요구하면 일자리를 영영 잃을까 봐 두렵다. 근로자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지만 막상 근로자들은 쉽게 사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준영에게 산재를 적극 권유하던 재복은 이런 상황에 당황한다.
밥 먹고 살기 위해서 지켜내고자 하는 #밥줄
'휴가'는 영화 내내 밥을 짓고, 먹고, 나누는 모습을 다양하게 비추며 우리의 삶에서 노동이 밥 먹고 살기 위한 일임을 새삼 상기시킨다. 밥을 먹는 행위는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행위이며, 그 밥을 버는 행위는 생명을 유지하지 위해서는 당위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직장을 밥줄로, 노동을 밥벌이로 부른다. 그렇기에 노동은 인간의 필수조건이다. 인권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인만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 또한 인간의 기본적 권리라는 사실. 영화 '휴가'는 일터에서 내쫓기고 밥줄이 끊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주인공 재복이 결코 지치지 않고 지어내는 밥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고 마음과 마음을 잇는 따뜻한 연대를 목도할 수 있는 귀한 영화다.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려하는 #가장
재복은 5년차 농성 중인 해고노동자임과 동시에 두 딸의 아빠인 한 집안의 가장이다. 농성장의 안살림을 책임지며 크고 작은 일들을 뚝딱뚝딱 해결해온 재복이 열흘 간의 휴가를 얻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그의 집이다. 재복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막힌 싱크대를 뚫고, 밀린 빨래를 하고, 아이들에게 밥을 지어 먹인다. 일주일 간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어 큰딸의 대학 예치금을 해결하고, 작은딸의 소원인 오리털 패딩을 장만해 그제서야 잠시 어깨를 펴기도 한다. '휴가'는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고자 노력하며, 밥줄을 붙들고 함께 살아가려는 재복을 비롯한 해고노동자들이 세상의 모든 가장이자 노동자들과 똑같은 사람임을 보여준다.
삶의 밥줄을 함께 지켜내려는 애틋한 마음의 #연대
재복과 그의 동료들은 복직, 즉 그들의 밥줄을 지키기 위해 5년째 천막 농성 중이다. 생활비를 벌기는커녕, 가족들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도 잘 받지 못하는 지경이다. 밥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진짜 밥줄을 위협하는 삶의 아이러니 속에서도 해고노동자들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농성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끝나지 않을 노동자들끼리의 단단한 연대가 존재한다. 세상과 타협해가는 과정 속에서 함께 분노하고 그 안에서 노조를 결성하고 세월을 같이 보내는 것이 그들이 선택한 일상이다. '휴가'는 삶의 밥줄을 지켜야만 하는 노동자들의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과 관계를 집중하면서 길바닥 농성을 선택한 이들의 존엄성을 묵묵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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